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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감상하라고? 그게 말처럼 시울까?

     

    종종 이런 말을 듣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능에서는 시를 스스로 해석하고 감상할 줄 아는가를 묻기 때문에 시를 감상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죠. 이 말은 옳은 말이기도 하지만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글을 많이 쓰고 시를 많이 볼수록 제 자신이 시를 정말 몰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 진리이며, 세월에 시간이 가면서 나이나 환경에 따라, 시를 보면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진정한 시의 깊이을 이해하는 것은 짦은 시간에 도달할 수 없을 수 있습니다.

     

    마치 고등학생들에게 시를 감상할 줄 알면 시 문제를 잘 풀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제 막 스타의 세계에 입문한 어린이에게 ‘예전 스타크래프트 스타인 임요한 만큼 유닛 컨트롤 하면 되는데, 왜 마린으로 럴커를 못 잡냐?’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더군다나 객관식으로 시 문제를 내는데?

     

    사실, 시를 감상하는 능력을 객관식 시험을 통해 평가하겠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제법 유명한 대학 국문학과 다니는 친구가 저에게 했던 말이 문득 생각이 납니다.

     

    “고3 때는 어떻게 답을 골랐던 건지 모르겠어. 대학 다니면서 배우고 생각하다보니까, 요즘은 어쩌다가 언어영역 문제 보면 ‘이런 걸 이렇게 쉽게 단언할 수 있나’하면서 문제 자체가 납득이 안 돼.”

     

     

    하지만 객관식이기 떄문에 길이 보인다!!!!

     

    결국, 수능에서 시에 대해 물을 때는 오답시비가 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합니다. 즉, 어느 누가 보더라도 이렇다고 인정할 수 있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문제를 내야 하죠. 이 말은 감상이니 어쩌니 해서 시를 가슴으로 느끼고 이런 것을 하기 이전에 몇 가지 요소들을 면밀하게 분석하는 힘을 키운다면 어렵지 않게 답을 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부탁드립니다. 詩라는 말에 지레 겁먹지 마세요. ‘내 주제에 무슨 시를 감상하냐’ 하면서 해설을 외우려하지 마세요. 수능 체제에서는 주관적인 문학적 재능을 동원해서 시를 느끼고 ‘여기에 점을 찍은 의미가 뭘까? 여기서 왜 행을 바꾸었을 때의 그 미묘한 뉘앙스를 알아 챌 수 있어?’ 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국문학도들이 할 일입니다. 수험생들은 몇 가지에 객관적인 항목에 맞추어서 시를 관찰하고 문제의 전제에 충실하게, 묻는 데로 답을 하면 됩니다.

     

     

    그래서 생각 없이 외우면 손해본다

     

    이 문제를 논거로 들어보고 싶습니다.(대충 보지 말고 한 번 숙고해서 풀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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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房)은 우주(宇宙)로 통(通)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風化作用)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 윤동주, 또 다른 고향(故鄕)-

     

     

    17. <보기>는 문화적 상징의 맥락에서 (다)의 시어들을 정리한 것이다. 이를 활용하여 (다)의 시어를 해석한 것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 백골 : 불안, 결핍, 순결, 금욕, 묵상의 대상

    * 방 : 공포, 밀폐, 비밀, 몽상, 폐쇄적 환상

    * 어둠 : 혼돈, 기원, 성숙, 휴식, 물질적?정신적 힘의 교류

    * 바람 : 권능, 영감, 전달, 공기, 순수성과 열정

    * 개 : 감시, 충직, 통찰력, 보이지 않는 세계의 영매(靈媒)

     

    ① ‘백골’은 시적 자아의 빈약하면서도 정결한 삶을 상징한다.

    ② ‘방’은 시적 자아의 내면에 깊숙이 존재하는 정신적 공간을 상징한다.

    ③ ‘어둠’은 시적 자아의 고통의 근원이자 영혼을 성숙시키는 존재이다.

    ④ ‘바람’은 시적 자아의 영혼을 소멸시키는 대기의 힘을 의미한다.

    ⑤ ‘개’는 시적 자아의 영혼을 일깨워 우주로 안내하는 존재이다.

    =================================<200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

     

     

     

    이 문제의 정답은 ④입니다. 바람은 ‘영혼을 소멸시키는 대기의 힘’이라기보다 ‘화자의 각성을 촉구하는 원형적 심상’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겠죠.

     

    이 문제에서 가장 큰 논란이 되었던 문항은 ①번입니다. 많은 선생님들과 참고서에서 “백골은 시적 화자의 ‘영-혼-육’ 중 ‘육’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부정적인 존재이다.” 라고 서술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인데요. 아마도 이 문제를 출제하신 교수님께서는 무비판적으로 참고서의 해설을 외우지 말고 한 번이라도 스스로 생각을 해 보고 시어의 뜻을 대입해 보는 습관을 들여 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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